
[인문여행]은행 목욕탕 병원 등 한국 1호 [김동현의 인문기행(11)] 천일의 임시 수도, 부산① 한국전쟁 중 1023일간 임시 수도였던 부산은 나라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지지를 받고 기사회생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부산의 뿌리는 원래다. 동관은 조선시대 동남해안 국경수호의 군사적 요충이며 일본과의 외교 업무를 전담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 정벌의 선두인 코니시 유키나가가 동관성에 와서 "싸우고 싶다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다면 길을 날린다"고 하면 송상현의 동관 부사는 "싸우고 죽기 쉽지만 길을 나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진년에 열린 해전 16번 중 7번이 부산에서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 가을 전라좌수사 이승신이 전라우 수사 이경기, 경상우수사 원균과 함께 몰운대에서 적선 24척, 자성대 앞에서 130여척을 몰아낸 부산포 해전 돛의 승전일인 을 부산시는 1980년부터 부산시민의 날로 제정, 각종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도를 막고 호남 곡창을 보호한 이순신이 호남이 없으면 조선이 없다고 말했듯이 부산이 없으면 대한민국이 없다고 할 정도다. 실제로 6월 부산시립미술관 국제서예전에서 한국대표서예가 박원규 씨는 와카무 부산 시무대한민국의 한간체 작품을 출품했다.
[작년 6월 부산시립미술관 국제서예전에 출품된 박원규 서예가의 작품 부산이 없으면 대한민국이 없다(와카무 부산 시무 대한민국, 약무부산시 무 대한민국)] 부산은 광복 후에는 수많은 귀환동포와 피난민을 안고 돌보며 무역입국 경제개발 시대에는 수출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개항과 전쟁, 산업화를 거쳐 조용한 어촌이 국제도시로 자란 부산의 역사는 그대로 한국 근대사다. 부산은 해양과 대륙문화가 교류함으로써 외부에 관대하고 포용하는 물건이 장대하고 문화적 폭이 광대하다. 따라서 부산에는 매우 대한민국 1호가 많다. 한국 고구마 시장은 부산입니다. 1763년 11대 조선통신사 좀이 쓰시마섬에서 접대를 받은 고구마를 특별 부탁으로 얻어 기후가 비슷한 영도청학동에서 재배했다. 이를 부추기는 고구마라고 하지만 부채는 작다는 의미의 베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당시 2년 정도 걸리는 통신사의 가는 길은 멀고 위험하기 때문에 서명은, 정상승 같은 사람은 통신사 대신 오히려 유배도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동관 부사 출신인 좀은 스스로 자원해 해도를 나온 것이다. 민속주 1호인 산성 막걸리는 1703년 완성된 한국의 최장 산성인 김정산성 축성 때 유명해진 술이다. 한국 최초의 양조장인 후쿠다 양조소도 1887년 부산에 설립됐다. 부산에는 거친 바다와 싸우는 배가 많기 때문인지 술 고래(부산 방언에서는 후쿠로)도 많다는 통계가 있다.
(3천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동양 최대의 공중욕장 허심청에는 노천탕과 온갖 테마탕이 있다.) 공중욕장도 부산에서 시작됐다. 전국 온천이 가장 많은 곳이 부산에서 35곳이나 된다. 온천장이 특정 장소를 나타내는 고유명사가 될 정도다. 일본인 소유의 봉래관이 도레이 관광호텔로 바뀌었지만 지금은 마음까지 깨끗이 비운다는 허심청으로 거듭났다. 3천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동양 최대의 이 공중탕은 하루 8787명의 입장 기록도 갖고 있다. 은행이 가장 먼저 들어간 것도 부산이다.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는 시부자와 에이이치가 세운 제1은행 지점이 개항 2년 후인 부산에 상륙했다. 한국 지방은행 효시도 1912년 설립된 규포은행이다. 경상도 돈은 규포에 모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규포는 조선시대 물류집산지였다. 근대식 서양의료기관인 병원도 부산에서 시작됐다.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인 광혜원보다 8년 앞인 1877년 제생의원이 개원했다. 개항과 함께 건너온 일본인을 위한 병원이었지만 조선인 환자도 받았다. 한글학자이자 한의사였던 지석영은 이 병원 마츠마에 원장으로부터 종두법을 배웠다. 오늘 부산대학병원의 원조다. 1917년 범일동에 들어간 한국 최초의 면직직장 조선직은 전국 면공의 30%를 차지한 국내 최대 기업이었다. 면분을 마시면서 저임금과 고생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던 노동자들이 6회나 파업투쟁을 벌였다. 노동 약탈에 지친 직원들이 범일동 회사 근처에서 즐겨 먹은 음식은 문어에 참기름, 고추장을 넣어 조리한 문어볶음이었지만 최근에도 조방 문어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제의 군수공장인 조선 방직의 자리를 지나는 길 조방로의 이름을 바꾸자는 청원도 속삭이지 않는다. 범일동에는 부산 대표 독립운동가 박재혁 거리가 있다. 그는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29세로 금식별세를 했다. 1930년대 친일파 처단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은 박재혁의 활동으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1913년 개장한 한국 최초의 공설해수욕장은 부산송도로 서핑도 여기서 시작됐다. 이밖에 뮤직박스, 가라오케, 담배, 찜질방, 이탈리아 수건 등 대중문화는 거의 부산에서 퍼졌다. 그러나 부산이 해외 문물의 첫 시험장이라는 뒷면에는 일본 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 기지로 이용되는 통증도 위치하고 있다. 맑은 날에 쓰시마섬이 보이는 카독도는 적군과 대전하는 최전방 군사기지였다. 위기 상황을 알리는 봉수대의 출발점은 카독도였으며, 임진왜란의 첫 신호도 거기서 시작되었다. 임진왜란 후 가덕도에 와서 조선에 몰래 총기를 팔아온 일본 밀수인 43명이 국가반역죄로 일본에서 처형된 사건도 있었다. 일본은 러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카독도 남단 외양포 주민 64가구를 몰아내 포대사령부를 주둔시켰다. 이주에 반대하고 있던 양청호 씨 집성마을을 총도로 위협해 마을 전체를 태워버렸다. 일본 수탈의 상징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이다. 조선인을 징용이나 정신대로 끌어가는 송출장이 부산이었기 때문에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에 맞춰 페리호를 운행해 여객선이 아니라 연락선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 시대의 인재 송출 통증을 표현한 대표적인 노래가 남인수의 울고 해진 부산항이다. 이후 한·일 관계가 정상화해 1970년 부관 페리호가 취항하면서 크게 히트한 노래가 조용필의 돌아와 부산항으로 향했다. 원래 이 노래는 통영 출신 가수 김해일의 돌아와 충무항에이며, 가사도 꽃이 피는 미륵산에... 떠난 충무항에 갈매기만이 슬픈, 세병관의 둥근 기둥에 기대어서... 그러나 김해일은 노래를 불어넣은 직후 대연각호텔 화재로 사망했다. 그 무렵 4반세기에 걸쳐 단절된 부관 페리호가 다시 열리자 정부의 적극적인 조선총연모국 방문정책에 따라 이 노래를 홍보용으로 활용했다. 노래 가사로 모양을 동포의 형제로 바꾸고 장소도 통영에서 부산으로 변경했다. 재일동포 98%가 한국 출신이기 때문에 부산은 이들을 초대하는 최적지였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후 원한으로 가득 찬 동레현은 납치된 조선인들의 송환협상을 위해 건너온 일본 사절단의 숙소를 부산포에 둘 수 없다며 절영도로 내쫓았다. 지금의 영도인 절영도는 신라 때부터 말사육장이며,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말이 빨리 달리는 장소라는 뜻이다. 절영도가 멀고 부끄럽다고 일본인이 입주를 거절하자 수정동의 두모포에 왜관을 마련해 주었다. 한국 최초 세관인 두모진 해관 자리가 지금 수정시장 속에 남아 있다. 무역 확대와 일본인 거주자가 늘어남에 따라 조차 초량 지역으로 확장해 옮기게 되면 양모포를 옛 왜관으로 고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11만평이 되는 새로운 왜관은 용두산을 기점으로 행정집행부인 동관과 상업지역의 서관에 각각 큰 건물인 대암이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을 대청동이라고 한다.
74세 최고령의병장 최익현이 쓰시마 유배도 눈인 초량으로 "왜 녀석은 밟지 않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며 버선 아래 흙을 깔고 물 한동이 실려 가서 마지막으로 단식으로 절명하고 시신이 구름이 되어 왔을 때,
(최지원이 신선해져 유람했다는 신선대 맞은편에 화물 전용 신선대역이 생겨 컨테이너 터미널이 됐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부산은 경관이 빠진 높은 지대가 매우 많다. 해운대, 태종대, 이기대, 몰운대, 신선대, 첨이대, 실란대, 쏘나타대 등이다. 해운대는 최초의 해외 유학자 최지원의 유적이 있는 곳으로, 태종대는 태종무열왕의 활적으로 5천여 글루의 수국 군락지가 있다. 이기대는 두 사람의 기생이 수영성을 함락시킨 왜장을 안고 자결한 곳으로 몰은대는 부산 대치 때 이순신의 오른팔인 정은이 순직한 곳이다. 다카야마 윤성도가 6년간 유형생활을 하고 있던 키장 다케나리사토의 해송구를 황호대라고 한다. 이백과 도영면이 즐겨 방문한 양자강하류의 황학루에 비유한 것이다. 부산 진성 서쪽 선착장에 있는 용가대는 조선통신사의 출항지로 무사히 항해를 기원하는 해신제를 보낸 곳이다. 신선한 안초비회로 유명한 대변항은 조선시대의 공물창고인 대동고 인구를 줄인 큰 해변이라는 뜻이지만 푸른 꿈이 있는 대변자가 거슬러 올라가면서 대변초등학교를 용암초등학교로 개명까지 했다. 오영수의 <혼촌>은 이곳 대변으로 앙초비의 일로 연명해 나가는 젊은 미망인의 애환을 다룬 소설이다. 용도 연성동에서 동삼동에 이르는 가파른 언덕의 피난민촌 절영해안이 시라세촌으로 바뀌어 부산 산토리니가 됐다. 영화 변호인 촬영지이므로 흰 벽에 당신의 변호사를 맞출까? 나를 도와도라고 말한 김영애의 절실한 애소가 새겨져 있다.
부산의 숨은 ‘이바구’를 모은 책 ‘천일 수도, 부산부산 없으면 대한민국 없다’ 저자 김동현(76·사진) 씨는 자신의 책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 수도시대 이야기부터 부산에 있는 한국 1호, 영화산업과 야구문화, 부산의 맛, 카독신공항과 2030 부산세계박람회의 염원 등 지역 역사와 현안을 정리했다. 토박도 잘 모르는 이야기를 책에 낸 그는 부산 사람이 아니다. 그가 지역과 맺은 인연은 불과 3년. 경남 하동에서 자라 1961년 부산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보낸 고등학교 생활이 전부다. 이후 40년 가까이 서울살이를 하고 있던 그가 부산과 다시 다가온 것은 2000년대 초 부산고 60년사 편찬 작업에 참여하면서다. “일제 시대, 부산고가 부산 공립 중이던 시절, 졸업생인 일본인을 만나 일본 오사카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일치 근처에 있던 노인들이 부산을 꿈에 그리는 고향으로 하고, “그리운 부산”이라는 책을 받았습니다만, 매우 감동을 받았습니다. 부산을 떠나 사는 자신의 모습도 일본인 졸업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기회만 되면 부산을 찾기 시작했다. 과거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에게 부산은 지치고 힘든 시간에 위로를 주는 길 같은 곳이었다. 부산에 지는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19에서 집에 갇혀 있는 시간이 늘어 부산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의 빚처럼 압박해 왔지만, 팬데믹이 나에게 준 선물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피란 수도인 부산의 희소 사진 63점이 공개됐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과 부산발전연구원이 기록물을 찾기 위해 필란 수도 부산기록 찾기 공모전을 추진한 결과물이다. 이번 응모된 사진 속에는 발생한 부산국제시장 화재사건 이전의 시장 모습도 있어 매우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이와 함께 광복동의 거리 풍경, 텐트 교실과 운동회의 모습, 맥아더 장군 퇴역 후 새로 부임한 아이젠하워 장군 환영 대회 등 당시의 선명한 역사 현장이 담겨 있다. 다음은 행정자치부가 공개한 피란 수도 부산의 희소사진 사례다.
▲ 이송연맹이 1952년경 촬영한 국제시장의 모습으로 일본식 건물과 수많은 인파가 붐비는 시장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산국제시장, 공모전 당선작)
▲ 국제시장 화재 후 모습(국가기록원 보존사진). 화재사건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부산국제시장의 모습이다.
▲ 피란 수도 시대의 텐트 교실. 전쟁에서 갑자기 불었던 인구에서 교실이 없기 때문에 텐트에서 수업해야 했던 부산시 조양동 항도초등학교의 모습이다.
▲ 미국 아이젠하워 원수 환영대회 준비 모습. 맥아더 장군 사임 후 새로 부임한 아이젠하워 장군의 방문 뉴스를 듣고 개최된 환영대회 전경 사진이다.
▲ 전쟁 종전 후 광복동의 거리 풍경. 전쟁이 끝난 직후 1954년경 촬영된 광복동 거리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 전쟁 종전 후 광복동의 고급 시계점. 전쟁이 끝난 직후 1954년경 촬영된 광복동 거리의 고급 시계점 진열장 모습이다.
▲ 1950년대 부산시청사의 모습. 전쟁이 끝난 뒤 1955년도 용두산공원에서 구 부산시청사를 촬영한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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